무더위의 음악
트로피컬은 그 자체로 명확히 규정되는 장르라기 보다는, 단지 음악이 열대 기후 특유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이국적인 스타일을 표현할 때 설명할 수 있는 캐치하고 커머셜한 명칭에 가깝다. CHS의 라이브 영상처럼, 울창한 숲과 푸른 빛의 자연, 그리고 무더우면서도 시원한 여름의 분위기를 음악의 주제로 한다면, 다양한 스펙트럼의 음악 앞에 '트로피컬'이란 수사가 붙을 수 있다.
CHS는 '트로피컬 사이키델릭 그루브'로 자신들의 음악을 정의했다. 다소 복잡하게 보일 수 있는 표현이지만, 차근차근 보면 이해가 어렵지 않다.
먼저 '트로피컬'이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뜨거운 태양과 해변의 파도소리와 같은 것들을 그리는 음악이다. 두 번째로 '사이키델릭(Psychedelic)'이란 취한 듯한 몽롱한 환각 경험의 표현을 뜻하며, 이로 인한 '사고 확장(Mind Expanding)'과 정신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에 그 문화적 뿌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루브(Groove)'란, 재즈와 같은 음악에서 느낄 수 있는 충동적인 리듬 감각으로,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거나 리듬을 타게하는 그 모든 느낌과 스윙의 감각을 의미한다.
따라서 종합해보면, CHS의 음악은 "한 여름의 바다를 몽환적인 사운드와 매력적인 리듬"으로 만들어진 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표현조차 뜬구름처럼 느껴진다면, 당신이 CHS의 음악을 직접 들었을 때 느껴지는 그대로의 무드라고 생각해도 좋다. 독창적인 스타일을 명확히 규정하고 정의할 필요까지는 없다.
'트로피컬'이라는 단어는 2010년대에 하우스 음악의 하위장르인 '트로피컬 하우스(Tropical House)'가 등장하면서 자주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우스(House)' 장르는 우리가 흔히 EDM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스타일을 대부분 하우스 장르로 분류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대중적인 감각이다. 여기에 재즈나 소울의 무드 혹은 그루브를 강조한 세부 장르를 '딥 하우스'라 불렀고, 이 딥 하우스 음악 중에서 말 그대로 '트로피컬'한 느낌을 주는 노래를 '트로피컬 하우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복잡할 것 없이 트로피컬 하우스는 멜로디와 분위기가 밝고 청아한 여름의 느낌이 있다. 애플의 벨소리로 유명한 악기인 마림바나 플룻을 주로 사용하고, 여성 보컬을 활용하는 등 최대한 팝적인 느낌을 내는 것도 특징이다. 그래서 트로피컬 하우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던 2015년 즈음에 유행했던 전자음악 혹은 팝 음악을 들어보면, 어렵지 않게 '트로피컬 하우스'를 발견할 수 있다.
주류 팝 시장에서 트로피컬 하우스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장르이다. K-POP 역시 적극적으로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를 차용하고, 사랑한 시기가 있었다. 악동뮤지션부터 위너, 청하, 아이즈원, 효린, 그리고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켰던 브레이브걸스까지. 하지만 2010년대 후반 트로피컬 하우스의 엄청난 성공은 그만큼 이 장르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트로피컬'이라는 수사는 결국 정서적 묘사와 분위기를 기반으로 하는 개념이므로, 트로피컬한 느낌에 대한 시대의 동경이 끝나면서 (혹은 지루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그 생애가 막을 내리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시점에서 필자에게 트로피컬은 뭔가 'AI가 자동으로 만들어 낸 유튜브 콘텐츠 혹은 숏폼 영상에 배경음악으로 자주 쓰이는 그저 그런 EDM'일 것 같은 의심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단어이다.
다만 2010년대의 '트로피컬 하우스'가 계속 묘사해왔던 지루한 여름 음악에서 벗어나면 새로운 '트로피컬'을 발견할 수 있다. Polo & Pan의 앨범 <Caravelle>은 프렌치 팝 스타일와 일렉트로니카 요소를 사용해서 이국적인 사운드를 개성있게 표현한 프렌치 일렉트로닉 앨범이다. 독특한 리듬과 멜로디가 풍부한 자연과 휴양지 혹은 여름의 따스함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다양한 전자음악 요소와 이국적이고 전통적인 샘플을 사용하여 독창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결국 '트로피컬'도 트로피컬 나름이다. 뜨거운 햇볕, 넘실거리는 파도 소리, 자연과 바다가 주는 여름의 분위기가 어떻게 묘사되는가에 따라 한 때 반짝였던 히트송 스타일 중 하나일수도 있고, 영원히 남을 여름의 클래식이 될 수도 있다. 혹은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동해>처럼, 한국의 포크와 인디 록의 느낌을 기반으로 아주 잘 로컬라이징된 트로피컬 음악이 만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올해 한국이 동남아보다 무덥고 습한 여름 날씨를 기록하면서 이제 '트로피컬'은 더이상 이국적인 개념이 아니게 되었다. 어쩌면 휴양지에서 느끼는 더위와 해변의 낭만을 예찬했던 '트로피컬'은 이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될지도 모른다. 몰디브가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국토가 수몰될 위기에 처해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지가 벌써 15년도 훌쩍 넘었고, 지구 온도상승폭이 '종말'을 예견했던 과거의 예측보다도 가파르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는 사람도 이제 없다. '어떻게든 되겠지'라 생각하며 기후 문제를 수수방관하는 (필자를 포함한) 누군가에 대해 도덕적 지탄을 하는 것도 부적절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올해 개최된 펜타포트에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8월 3일, 가장 뜨거운 시간대인 3시 30분부터 4시 10분까지, 어떤 그늘도 없는 서브 스테이지에서 새빨간 비주얼라이저와 함께 '트로피컬'을 연주했다. 코로나 이후 인천 펜타포트 락페스티벌은 항상 무더위와 열사병과 싸워 왔고, 관람객들은 언제나 마땅한 대책 없이 더위와 싸워가며 '기후 위기'를 온몸으로 체험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옥같은 무더위의 한 가운데에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 피서(避暑)하지 않았다. "지구는 숨을 쉰다"라 말하며 뜨거운 더위에 던져진 우리를 감각하게 만들 뿐이었다.
기후 변화와 더위에 대해, 이제는 듣는 사람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전과는 전혀 다른 감정과 이야기를 가지고 '트로피컬'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너무 무거워서 모두가 외면할 수밖에 없는, 지구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모든 표현들이 곧 트로피컬 장르의 새로운 주제가 되리라 생각한다. 필자의 주장처럼 만약 '네오-트로피컬(Neo-Tropical)'이라는 장르가 탄생한다면, 그것의 클래식이 되지 않을까 하는 노래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의 <사과>를 소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