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산계 사운드
2023년 유튜버 '김계란'이 프로젝트를 통해 인터넷 방송인 3인 - 쵸단, 마젠타, 히나 - 과 NMB48(AKB 계열 그룹의 난바 버전) 출신의 아이돌 1인 - 시연 - 총 4명으로 데뷔한 걸밴드 'QWER'은 메인스트림 기획사의 아이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두터운 팬층과 인기, 그리고 화제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아주 특이한 케이스의 걸그룹이다.
QWER의 프로덕션 방식, 서브컬쳐 혹은 '인터넷 방송'과 관련된 잡음, '록 밴드'라는 정체성과 실력에 대한 논란 등이 한 때 일부 커뮤니티나 SNS 상에서 뜨거운 감자였던 적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내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그런 음악 외부적인 요소들이 아닌 'QWER'의 음악적 색채와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QWER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밴드 음악, 그 중에서도 '응원계' 혹은 '탄산계'라고 불리는 종류의 인디 음악을 레퍼런스로 두고 있다. 일본 밴드 'Cidergirl'이 2017년 발매한 <Soda Pop Fanclub 1>의 <Melancholy>라는 곡을 예시로 든다면, 들리는 것과 같이 선명한 기타 리프와 빠른 BPM, 경쾌한 멜로디 라인과 청량한 보컬 등이 탄산계 음악의 특징이라 말할 수 있다.
만화 오프닝에 나올 것만 같은, 일본 특유의 청량한 사운드적 특징은 기타의 종류와도 연관이 깊다. 대표적으로 펜더사의 스트라토캐스터 - Stratocaster - 와 텔레캐스터 - Telecaster - 가 일본에서 특히나 인기가 더 많은데, 높은 톤을 강조하며 특유의 선명하고 경쾌한 소리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리의 청량함과 벅차오르는 감정을 극대화하기 위해 이펙터도 극단적으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은근 악기나 소리공학에 대한 높은 이해도 필요로 하는 편이라고 한다. 실연할 때에도 복잡한 멜로디를 깔끔하고 딱 떨어지는 박자에 맞춰 연주해야 해서 곡의 분위기나 이미지에 비해 ‘탄산계’ 음악은 연주의 난이도도 높고, 그만큼 청각적인 쾌감이 확실하게 있는 매력적인 사운드이다.
'탄산계'는 일본의 서브컬쳐와도 아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 장르적 뿌리가 '니코니코동화'에 있기 때문이다. Cidergirl 역시 '니코니코동화'라는 일본의 동영상 플랫폼에서 활동하던 아마추어 아티스트 출신이다. '니코니코동화' 음악은 매우 아마추어스러운 MIDI 작곡이면서, 보컬로이드 소프트웨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듣는 대중음악과 비교하면 매우 이질적이다.
하지만 그런 음악적 특성들, 그러니까 너무 깔끔해서 어색한 모든 디지털적이고 아마추어스러운 소리들이 장르적인 문법이자 곧 컨텐츠의 매력이었다. 오히려 서브컬쳐 음악들이 2000년대 후반에 들어 인터넷과 SNS의 대중화와 함께 보편화가 이루어지고, 음악 산업이 팬덤과 커뮤니티 문화에 영향을 받게 되면서 <Lemon>으로 유명한 '요네즈 켄시'와 같은 니코니코동화 아티스트들이 하나둘씩 메인스트림 시장에 데뷔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니코니코동화와 보컬로이드를 중심으로 서브컬쳐 음악 씬이 형성되었다면, 우리나라의 경우 리듬게임 브랜드, 특히 'DJMAX'와 'TAPSONIC'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일본이 밴드 음악을 기본 베이스로 접근했던 것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역시 K-POP의 나라답게 POP과 EDM의 요소를 적극적으로 차용했다는 부분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서브컬쳐 음악 프로듀서 중 유명한 몇몇 아티스트들 - 'TAK', 'Warak' 등 - 도 최근에 들어서는 대중음악 씬에 적극적으로 편입되어 활동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점점 더 미디어가 파편화되고, 소비자 연령층이 어릴 수록 자신이 선호하는 인플루언서 중심으로 컨텐츠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 그래서 소화하는 컨셉과 기획에 따라서 서브컬쳐적인 무드들이 메인스트림에서 적극 차용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QWER의 음악적 방향성이 '록 밴드'인 것은 의외라면 의외인 요소라 말할 수도 있다.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이 생각보다 더욱 심각한 밴드 불모지인 것도 그렇고, 분명히 서브컬쳐 음악의 선호도 국내에서는 밴드보단 EDM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QWER은 '전략적으로' 밴드 음악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감동적인 성장 서사'의 힘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걸 밴드'의 성장 서사를 주제로 하는 애니메이션은 과거의 '케이온', 최근의 '봇치 더 락!'과 같이 유명한 작품들이 너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QWER은 강력한 코어 팬덤을 만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걸 밴드’ 팬덤을 공략한 사례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마 앞으로도 QWER은 이러한 음악적 색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며, 한국형 '탄산계 록 밴드'로 꽤 오래 인기를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특히 메인보컬인 시연을 중심으로). QWER에게 '탄산계 걸 밴드'라는 장르적 타이틀은 지금의 성공적인 인기와 더불어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까지 획득할 수 있는 소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