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부야계와 K-POP
타임리스한 멋과 감성을 추구하는 리스너들에게 Lamp의 음악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멋진 취향으로써 유효하다. '홍대 인디음악'이 있는 것처럼 도쿄에는 '시부야계' 음악이 있(었)고, Lamp 역시 '시부야계'로 분류되거나, 혹은 그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로 보는 경우가 있다. 사실 '시부야계'라는 말이 한정된 지역에 의미를 두는 언어인만큼 특정 음악의 스타일을 명확하게 범주화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어떤 일본의 음악들이 '시부야계'로 분류되곤 한다는 것이, 또는 '시부야계' 아티스트의 음악을 찾아 들었을 때 그 노래들이 일관적이었다는 필자의 사적인 경험이 혹시 시부야계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1968년 시부야에 세이부 백화점이 진출하면서 시부야가 쇼핑의 메카가 되자 '타워 레코드'나 'WAVE', 그리고 'HMV'와 같은 대형 레코드샵들이 시부야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다양하고 많은 수량의 해외음반들을 수입해서 판매하기 시작했고, 8-90년대 일본의 유례 없는 경제 호황 속 소비자들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리스너 및 음악가들은 시부야 레코드샵에서 제공하는 폭넓은 해외음악 아카이브를 적극적으로 소비하였고, 자연스럽게 일본 대중음악 씬에 외국의 세련된 팝 문화를 수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전의 일본 대중음악은 익히 알려져있는 <푸른 산호초>와 같은 아이돌계 음악이거나, 한국의 '트로트'와 유사한 장르인 엔카 음악이 주류였던 만큼, '플리퍼스 기타(Flipper's Guitar)'와 같은 초기 시부야계 음악의 등장은 완전히 신선한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해외 인디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트렌디하고 멋있는 음악을 만들었다. 당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하나였던 '플리퍼스 기타'의 영향력과 충격은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그것과도 비교될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할 만큼.
이외에도 '피지카토 파이브(Fizzicato Five)', '판타스틱 플라스틱 머신(FPM)'과 같은 아티스트들 역시 시부야를 중심으로 재즈, 보사노바와 같은 해외의 다양한 장르를 창의적으로 혼합하여 멋있고 트렌디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시부야는 당시 일본 대중음악을 이끄는 가장 트렌디한 지역이었고, 그 곳에서 잘나가는 세련된 음악들을 '시부야계' 음악이라 부르며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2000년대 초반, '해피로봇'에서 일본의 음악들을 적극적으로 수입해 들여오기 시작한 이후부터 한국 대중들에게도 '시부야계'라는 말이 알음알음 퍼지기 시작했다. 자주 들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장르들이 자유롭게 믹스된 세련된 외국 음악은 그 자체로도 아주 신선한 것이었지만, 어쩌면 당시 한국 대중음악의 거대한 흐름이었던 '슬픈 발라드'와 아주 대척점에 있는 존재였을 수도 있다. 특히나 남들이 흔히 접할 수 없는, 새롭고 힙한 무언가를 추구하는 젊은 대중들에게 이 음악은 아주 매력적인 취향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선 '플리퍼즈 기타'와 같은 기타 사운드 위주의 '인디 팝' 장르 - 혹은 정통 시부야계 음악 - 보다는 'FPM'과 같은 전자음악, 또는 'Nujabes'와 같은 힙합 음악을 기반으로 믹스쳐된 장르의 음악들이 인기가 많았다. 이때부터 한국의 대중음악 씬에도 '시부야계'에 영감을 받은 새로운 아티스트와 음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록 밴드 음악으로만 국한되었던 '홍대 인디'라는 정체성이, 마치 90년대의 '시부야계'처럼, 다양한 장르와 섞이면서 그 외연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2000년대 한국에서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전 국민에게 나의 개성과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유례 없는 공간이었다. 특히나 배경음악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음악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를 선호했고, 힙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김종국의 <한 남자>나 버즈의 <겁쟁이>, 엠투엠의 <세글자>가 배경음악인 것이 다소 지루하다고 생각한 일부의 이용자들은 허빙어반스테레오의 <Hawaiian Couple>, 클래지콰이의 <내게로 와>, 하우스룰즈의 <Do it!>같은 음악으로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곤 했으며, 이는 곧 홍대 인디, 또는 시부야계를 알고 있으며 선호한다는 도취적 자아의 표현이자, 새로운 문화적 취향의 선언이었다.
이러한 '싸이월드 배경음악' 시장은 분명 지상파 방송 중심의 대중음악 시장과는 성격이 다른 또 하나의 문화적 플랫폼이었고, 메인스트림에 인디 문화가 전파되는 속도를 가속화하는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후 여러 아티스트들 - Epik High, Peppertones, Clazziquai, 롤러코스터 등 - 이 이러한(시부야계, 해피로봇계, 또는 싸이월드계)음악으로 상업적인 성공과 음악적인 성취를 동시에 이뤄내면서 본격적으로 한국 대중음악에도 '한국식 시부야계'의 감각이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DAISHI DANCE가 작곡에 참여한 빅뱅의 <하루하루>는 2008년 한국 음원시장에서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한국에서 가장 시부야계와 유사한 음악 - 애시드 재즈, 보사노바 기반의 밴드음악 - 을 해온 밴드 '롤러코스터'의 제작자 '지누(Hitchhiker)'가 작곡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Abracadabra' 역시 2009년 한국 음원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처럼 2000년대 후반의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다양한 한국의 음악가들이 시부야계로부터 받은 유산과 영감을 그들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개성있게 재해석함으로써, K-POP의 독자적인 정체성이 태동하기 시작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