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 판타지
서프 문화는 1960년대 미국에서의 서핑 인기와 함께, 서퍼들의 라이프스타일 - 그들이 즐겼던 음식과 패션, 미술과 디자인, 그리고 음악 - 에서 시작했다. 외국의 서퍼들에게 캘리포니아의 해변이 그들의 문화적 공간이 된 것과 같이, 한국의 서퍼들은 제주도 혹은 '부산의 송정 해변'을 배경으로 삼았다. 그래서 한국의 서프 록 밴드는 부산이나 제주도라는 지역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서핑이 지금처럼 주류 액티비티 문화로 자리 잡기 전부터, 세이수미는 부산과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서프 록’ 밴드로서 명성을 쌓았다. 이로 인해 물리적으로 좁은 국내 음악 시장에서도, 서울이 아닌 다른 도시를 거점으로 밴드가 활동을 이어 갈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 기반이 마련될 수 있었다.
초기 서프 록은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기 위해, 리버브와 비브라토를 사용한 일렉 기타 사운드를 사용하여, 말 그대로 해변의 분위기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기타 리프와 후렴구의 가사가 유명한 "Surfin U.S.A"는 서프 록을 대중화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노래 중 하나이다.
서프 록의 또 한가지 특징오르는, 가사 없이 연주로만 이루어진 인스트루멘탈 곡이 많다는 것이다. The Ventures의 "Walk Don't Run"은 이러한 서프 록의 특징을 정의하는 대표적인 곡이다. 클래식한 서프 록 스타일보다, 풍부한 리버브와 빈티지한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The Ventures의 스타일이 최근 우리가 익히 들어 익숙한 서프 록 밴드의 사운드와 유사한 점이 많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밴드 음악은 사이키델릭한 사운드, 혹은 다소 빈티지하고 미니멀한 사운드를 추구하는 두 가지의 경향성이 양립하고 있는 것 같다. 후자의 경우, 여유로움과 다소 인디한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서 미니멀하고 로-파이(Lo-fi)적인 사운드를 차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Beat Happening은 이러한 밴드들에게 레퍼런스가 되기에 충분한 밴드이다.
세이수미의 곡들 역시 "Surfin U.S.A"와 같은 60년대 초기 서프 록 스타일보다는 비트 해프닝의 이러한 인디, 로-파이적 성향이 짙게 드러난다. 지금의 서프 록은 서퍼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자유로운 그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인디 문화 정신으로 확장하고, 이를 빈티지하고 낭만적인 사운드에 빗댄 감각들을 표출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되었다 할 수 있다.
2022년 EP "orientation"으로 데뷔한 지소쿠리클럽 역시 '서프 록'을 지향하지만, 조금은 다른 사운드와 분위기로 그들만의 감성을 구축하고 있다. 프로필에 보여지는 모습처럼, 지소쿠리클럽은 그들이 좋아하는 낚시와 캠핑을 음악적 정체성으로 삼았다. 지소쿠리클럽이 스스로 정의한 '캠핑 락 피싱 팝'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기존의 '서프 록'이라는 추상적인 스타일을 가장 개인적이고 솔직하게 풀어낸 새로운 언어라고 할 수 있겠다.
급격한 기후의 변화, AI의 등장과 발전처럼 초현실적인 것들이 이제는 현실이 되었고, 얼터너티브는 더 이상 얼터너티브가 아니게 되었다. 되려 서핑하고 캠핑하면서 살아가는 빈티지한 라이프스타일이 필자에게는 아주 긍정적인 낭만이자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요즘이다.